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그냥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누구나 인간이면 내일 일은 알지 못하는 게 답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이 시간 현재에 충실해서 살아야하는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단지 하루만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길고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를 하고 돈을 모으고 일을 한다.
하루를 위해 살것인가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하나만 고를수 없는 딜레마이긴 하다. 일화도 있지 않은가. 하루동안 너가 도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고 하자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돌다가 결국 해가 질때쯤 죽으버린 부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교훈은 욕심을 내지 말자는 것이겠지만 그 부자 또한 미래를 위해서 준비했던 것이 아닐까. 하루만 산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이 책의 내용을 오해하면 아니된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 저자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제와 소비를 분석하고 이런 책을 낸 것이다. 단지 모든 사람들에게 저렇게 살라고 한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비패턴이라던지 그들의 생활패턴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글로 펴낸 것이라 보면 된다.
일단 그들의 삶은 불확실하다. 다음날 어떤 삶이 기다릴지 모르는 것이다. 나라 자체도 불안정하다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꾸준히 계속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당장에 먹고 살것을 마련하는데 급급하다. 그래서 이런 패턴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선두주자가 무언가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팔게 된다. 당연히 그때는 이슈가 되어서 물건이 날개돋친듯 팔린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만의 독점을 고집하지 않는다. 후발주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물건 떼는 법이라던가 물건파는 법을 가르킨다. 당연히 선두주자들을은 후발주자들에 묻혀 판로가 없어지고 어느틈엔가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 돈을 벌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선두주자들은 후발주자들과 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손을 떼고 또 다른 아이템을 찾아서 떠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들의 발상이. 다른 사람들 같으면 잘 팔리는 항목이 있다면 자신만의 독과점으로묶어놓고 팔려는 생각이 들텐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전혀없다. 서로서로 나누고 공유하고 비법을 알려주고 전수하는 방식이다. 분명 자신의 몫이 적어지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그런 관계는 자신들의 지역을 떠나서도 계속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요즘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홍콩으로 가서 거기서 비자를 받아서 들어가는 방식인데 그곳에서도 이런 전수방식은 동일한다. 그들은 욕심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공생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중국으로 판로를 개척한 데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전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없는 곳은 없다던가.
더군다나 이른바 짝퉁도 오케이하는 그들이다 보니 더욱 그 관계는 잘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나이키가 아닌 나이스여도, 아디다스가 아닌 아이도스여도 싼 물건이면 상관없다는 식이다. 쓸 수 있을까지 쓰고 버린다는 그들의 의식과도 잘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전략이다. 편집상으로 '자세한 내용은 뒤애 있다'던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다는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굳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제대로 편집을 해서 순서를 맞췄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아주 조금은 다른 사회.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이 있는 곳. 그들은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한분야에 매진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모든 분야에 다양하게 잘할수 있는 '제너럴리스트'. 지금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오히려 그들이 더 잘해내고 있는 것은 아니려나.
샘터 10월호
표지의 그림이 복고풍으로 일년을 장식하고 있다. 이때까지 나온 것은 아는 것이었고 이번 호에 나온 것 또한 눈에 익은 것이나 그 명칭을 쓰지 않다보니 입에서 맴돌기만 한다. 뒷표지를 보고 알아냈다. 다식판. 가루를 꿀과 개어서 이 다식판에 꼭꼭 뭉쳐서 올려놓고 찍어낸다. 그러면 이쁜 무늬의 다식들이 튀어나온다.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책에서 사진으로 보아서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틀은 이제 어디서도 잘 볼 수 없는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전통은 남아있어야 좋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타깝다.
<이달에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나문희 선생님 이다. [수상한 그녀]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다. 비중상 조금 아쉬웠다면 이번 작품 [아이 캔 스피크]로 확실히 그녀의 연기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문희 선생님은 두가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굿바이 솔로]에서 말 못하던 할머니의 모습. 작은 보드판을 목에 걸고 다민니면서 의사소통을 하던 그녀. 천정명이나 윤소이 같은 신인들이 주연일때 그녀의 존재는 확실히 작품의 존재감을 드러내주었고 그녀의 연기는 그야말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인터뷰 기사 속에서도 나오듯이 그녀가 연기의 분기점으로 꼽는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나문희, 그녀의 또 하나의 모습이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 워낙 훌륭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책으로 읽었기에 어떤 의미인지 더욱 잘 알기에 그녀의 연기를 주목해 볼수밖에 없었다.
치매걸린 시어머님을 모시면서도 내색하지 않던 그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시어머니를 붙잡고 함께 죽자고 울부짖던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속의 그녀모습을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두작품으로 남아있는 배우의 모습이다. 다른 매체를 통해서 잘 볼수 없는 인터뷰이기에 더욱 소중함이 느껴진다.
이번호의 <특집>은 가을걷이. 봄에 씨를 뿌리고 한여름의 뜨거움을 견딘 곡식들이, 과일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고 익어서 떨어질때가 되었다. 걷어들여야할 타이밍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가을걷이를 하고 있을까. 결혼승낙을 받은 사람도,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사람도 있다. 저마다 자신들의 인생살이를 털어놓으니 그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경남 밀양의 만어사의 수많은 돌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라서 더욱 눈길이 간다. 수많은 돌들앞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앉아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나 또한 그곳에 가서 그녀처럼 앉아 있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수 없는 한가지 <별별박물관> 이야기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열화당 책박물관]이다. 요즘 책들을 이곳에서 보려하면 아니된다. 이곳은 오래된 책들이 가득한 곳이다. 동서양 고서가 4만여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오래된 책향기를 맡아보고 싶다면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재미일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한 한 권의 잡지, 샘터. 내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반갑고 새로운 정보들이 있어 더욱 유용하고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가득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게 된다. 한달을 들여서 천천히 한꼭지씩 읽어도 좋을 것이다. 빨리 돌아가는 사화에서 한권의 책으로 느긋함을 찾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암막의 게르니카
내가 처음으로 전시관을 찾아서 본 그림은 피카소의 그림이었다. 내가 보러 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와 엄마친구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모였던 그날. 우리는 노는 데 더 열중했지만 어린 내 눈에 그저 잠깐 보았던 피카소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보는 얼굴이 아닌 여기저기 기괴한 모습의 얼굴이 이상해보였다. 그것이 피카소 작품의 첫느낌이었다.
요코와 이든. 서로를 아껴주는 커플이었다. 그저 여느때와 다름 없었던 아침. 출근했던 이든은 911테러로 두번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요코는 <마티스와 피카소>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기획은 시간이 지난후 미국이 테러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으로 대응하자 전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서 <피카소의 전쟁>이라는 기획전시를 준비한다.
이 전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단 하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그 작품만큼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다.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작품이 필요한 법이다. 사람들은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을 더욱 집중하기 마련이다.
MoMA에서 일하는 요코는 게르니카를 전시할수 있는지를 요청하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불가. 알고 있으면서도 의사를 타진해본 것이다. 이 전시에 꼭 필요한 것은 게르니카인데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야기는 게르니카를 둘러싼 요코의 모험이라고 해도 좋겠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게 된 시기와 요코가 게르니카를 빌리기 위해 애를 쓰는 현재의 시기가 반복해서 교차 편집되어 있다. 그때 당시 어떤 상황에서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를 잘 이해할수 있게 되는 항목이다. 작가는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와 그의 작품을 도와주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긴 도라를 등장시켜 사실감을 주었다.
또한 여기에 그들을 도와줄 새로운 가공의 인물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피카소는 작품을 완성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 작품을 휴대에 전해줄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전쟁통에서는 말이다. 작가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었지만 분명 그때 당시에도 피카소를 도와주는 누군가가 존재했을 것이다.
독재정권들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피카소는 자신이 비록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고국인 스페인을 잊지 않았다. 스페인이 무력화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결국은 그렇게 되어 버렸지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는 이 게르니카를 그렸다. 만국전시회를 통해서 스페인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말이다.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는 법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적은 없다. 그 누구에게도 넘겨줄수 없다는 작품인지라 잘 볼수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어떤 상황에서 그 그림이 그려졌는지, 그 그림에 내포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를 그저 학문적으로만 외우고 있었다. 한권의 책을 통해서 한 작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작기는 하지만 표지에 나타나는 게르니카를 다시 본다.
본문에서 설명되어 있는 글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비교도 해본다. 피카소는 어떤 기분으로 이 작품을 그렸던가. 이 작품이 존재하는 한 이 세상에 전쟁은 없기를 독재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은 존재하지만 아직도 이땅에서는 어딘가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우리의 것을 주장했던 그.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싶어졌다. 요코가 그 작품을 처음 보고 평생을 바쳐 피카소의 작품을 좇았듯이 그런 강렬한 느낌을 받을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