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우리나라처럼 문맹률이 낮은 나라에서는 대필을 왜 하는거야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읽어보면 꼭 글자를 못써서 대필을 의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때로는 오래전 헤어진 연인에게 잘 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거나 더이상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절연장을 쓸때도 대필을 의뢰한다. 자신이 써야할 공식적인 제안서를 가지고 와서 대필을 하려다가 포포에게 혼나고 되돌아가기도 한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돈을 주고 남에게 시키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츠바키문구점의 주인인 포포는 선대, 즉 할머니의 일을 이어받았다. 그렇게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둘이었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포포에게 글씨쓰는 법을 가르쳤고 매사에 깐깐하게 엄하게 굴었다. 어느정도까지는 수긍하던 포포도 반항기가 들자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마지막까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돌아와서 할머니의 문구점을 열고 대필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포포는 할머니가 하시던 일을 하면서 자신이 선대라고 부르는 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키웠는지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또한 남의 글을 대신 써주면서 자신의 본 글씨를 잃어갈 때 할머니의 글씨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직접 글을 쓰면 될텐데 왜 대필을 하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직접 쓰지 않는다고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마음이 잘 전해지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라고 말이다. 이렇게도 정성이 가득 들어가는 편지들이라면,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서 종이와 펜을 고르고 글씨체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대필이라면 이편이 오히려 마음을 잘 전달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옆집 사는 바바라부인과 친구처럼 지내는 포포는 자신의 반항기를 아는 사람들이 나올까봐 걱정이다. 외국에서 살아서 이곳에는 또래 친구도한 없는 듯이 보인다. 문구점을 열고 자신에게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식당에 들러 밥을 먹는다. 친구는 없어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이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말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아는 사람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인연을 마나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또 익히게 된다.
따스함이 살아있는 이야기. 음식을 소재로 사용해서 글을 쓰던 작가는 '편지'라는 소재로 또한번 마음을 포근하게 덮어준다. 편지지라는 것도 사 본지가 오래되었다. 집에 있는 엽서들은 단지 모으는 용도일뿐이다. 오늘 한번 펜을 들어볼까. 비록 악필이라도 정성들여 쓴다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까.
여자의 미래
[여자의 독서]에 이어서 [여자의 미래]까지. 다산북스에서는 여자 시리즈를 기획한 듯 하다. 그만큼 여자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자의~' 를 붙여야할만큼 아직까지도 여자라는 존재가 비교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뜻일게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그런 스타일의 여자가 아니다. 그저 평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자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공과대학생이었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으나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것뿐이면 그녀의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박사과정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미국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편안하게 보낼수도 있었겠지만 창업을 하며 스스로 개발에 도전했고 이제는 합병을 거쳐서 사장 자리에 있다.
여자라는 존재는 어렸을때는 그저 남학생, 여학생으로만 나뉘겠지만 자라면서부터는 확실하게 입지가 바뀐다. 결혼을 하면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며느리인 것이다. 남자 또한 누군가의 남편이며 아빠이며 사위이겠지만 그 위치는 또한 극렬하게 차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엄마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더욱 잘 알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그녀는 자손이 많은 집에 맏며느리였다. 당연히 제사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 일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완벽할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런 여자이고 싶었던 것이겠다.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저 평탄하게만 살아왔다고 할수 있을지 몰라도 그녀가 해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누구나 할수있는 그런 일은 아니다.
그러나 원형탈모까지 일어날 정도로 힘들었다는 그녀의 글을 보면서, 울면서 그녀를 잡는 아이들 떠어놓는 독한 엄마가 되어야했다는 것을 보면서 다른 여자들은 다른 엄마들은 약간의 자괴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일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는 그녀.
모든 엄마들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엄마들 또한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경력단절녀'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환경에서 단절을 선택할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일하는 엄마가 무조건 최고인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키울수 없을 때 엄달들은 대안책을 생각해닌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이모님'이다. 저자 또한 이 선택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잘 돌봐줄수 있고 아이들과 잘 맞으면서도 자신들의 가정에 잘 지낼수 있는 이모님을 만났고 아이들이 '큰이모'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녀 는 이 모든 일을 해낼수 가 있었을 것이다. 조부모와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큰 이모님의 존재.
누군가는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결론은 하나였다. 아이들이 크기까지 약 10년, 자신이 일을 계속했을때는 40년. 그 비교를 했을때 지금의 비용은 충분히 감당해낼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지금으로 본다면 성공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치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저마다의 성공의 느낌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적절히 섞으면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글은 잘 읽힌다. 그러면서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앞으로의 미래는 누구에에게나 똑같이 다가온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다가올 미래지만 그 둘의 차이만큼이나 미래를 준비하는 내용도 달라야 할 것이다. 여자라면, 엄마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고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미래를 살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을꽃
정말 이 계절에 딱 들어맞는 한 권의 책. 하늘은 점점 높아져 가고 날은 점점 시원하다 못해 찬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꽃은 코스모스. 코스모스 색을 가지고 있지만 저혀 다른 꽃이 피어있는 표지의 [가을꽃]. 비가 내린다. 한 여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있다. 그 앞에는 꽃이 가득하고 유독 길게 올라와 있는 꽃을 쳐다보고 있다.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독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일이 없었다. 아마도 이번 책마저도 읽지 못했으면 나는 이런 시리즈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엔시씨와 나'시리즈중 세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엔시 씨와 사건을 설명해주는 나, 이 둘의 조합인듯 하다.
옮긴이이의 말을 참고로 하자면 이 시리즈는 살인이 없고 사람이 죽지않는 미스터리를 표방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세번째 자품에서 드디어 죽음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서 분위기는 전작보다는 - 비록 읽지는못했지만 약간 무거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학생들이 기다리는 고등학교 축제. 해마다 해왔지만 올해는 그 축제가 취소되었다. 바로 얼마전 축제를 준비하던 여학생이 죽었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떨어진 여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
학교에 모여 축제를 준비하던 여학생 그룹. 그들은 여학생답게 축제를 준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야기도 하고 준비도 하고 공식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이용해서 친구들과의 재미나는 시간도 보낼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그러던 그들에게 죽음이 찾아왔다.
자신들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던 그 친구는 옥상에 왜 올라간 것이며 그녀가 옥상에서 떨어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절대 자살은 아닐 것이다. 자살을 할 만한 요지는 전혀 없었다. 잠겨진 옥상문. 그 문을 지키고 있었던 선생님. 누구 하나 빠져나가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 들어가지도 않은 옥상은 그야말로 밀실이었으니 누가 그녀를 죽였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생각을 거듭하고 있던 그런 나에게 다가온 것은 죽은 아이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녀는 비를 맞으며 밖에 앉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이 있던 날 죽음을 맞이했다.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다. 이러다가 친구까지도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자신이 살고있는 작은 마을의 한 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를 준다.
사람이 죽은 것을 가지고 재미나다고 하면 안되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해가면서 이 죽음에 이얽힌 사연을 해결하려는 나의 노력이 눈물겹게 가상하다. 그러나 정작 사건 해결은 엔시 씨가 등장한 후에나 이루어진다. 내가 그렇게도 생각하고 고민하던 문제를 엔시 씨는 조사도 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들은 후에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고 해결한다.
엔시 씨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군다나 엔시씨는 탐정도 아닌 단지 공연을 하는 공연자인데 말이다. 아무리 복잡하지 않은 일상미스터리라고 해도 그의 등장부터 사건 해결이 좀 너무 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었다면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알아서 조금 더 동화되었을까.
일본에서는 6권까지 나온 이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이번 [가을꽃]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옮긴이의 말이 있었다. 이제서야 이 책을 알기 시작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엔시 씨와 나 시리즈를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홈즈를 능가하는 엔시 씨의 또 다른 모습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