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과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수짱은 내 얘기 같아서 반갑다는 여성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시리즈다. 거기에 고무되지 않고 이번에는 누나를 가진 남동생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내 누나 시리즈를 통해서 남동생들의 공감을 얻었던 마스다 미리는 좀더 범위를 넓혀서 가족이야기를 그려내었다. 나이 든 노부모와 과년한 딸 하나가 있는 사와무라씨 댁이다.
나이가 들면 독립하는것이 당연했던 서양에서도 생활비과 집값때문에 독립을 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한다.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부모은 는 혼자 있는 딸이 걱정이 되이서 언제나 대화끝에는 나이가 들었다며결혼을 하라고 성화지만 정작 이 딸, 히토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급하지 않다. 이미 40줄에 들어섰음에도 말이다.
마스다미리의 모든 만화들은 다 좋아하지만 특별히 이 사와무라씨 댁에 공감을 하는것은 우리집과 똑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부모님과 나이 든 딸. 약간의 나이를 더하면 우리집과 똑같은 구성이고 이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 또한 우리집에서 벌어지는 일과도 비슷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나이가 들어서 퇴직을 하신 사와무라 시로씨는 채육관에 다니시면서 운동을 하신다. 울 아빠는 아직까지도 일을 하시며 운동도 꾸준히 하신다. 시로씨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신다. 컴퓨터를 해볼까 했더니 히토미가 반대를 한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컴을 붙들고 있는데 집에까지 와서 붙들고 싶지 않다는 아주 이기적인 이유이다. 요리를 해볼까 했더니 엄마인 노리에씨가 머뭇거린다. 정리까지 깨끗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시로씨는 삐쳐서 그냥 내가 할수 있는 잠을 청하신다. 나이가 들면 더 잘 삐친다. 특히 남자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하면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약간은 자기 보호적인 반응일수도 있겠다. 젊은 날에는 무엇이나 할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에서 반대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수로 있겠다. 우리 아빠만 그런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심 웃음이 지어지는 한편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더 살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것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위치가 있고 친구들을 만나고 어느정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분명 부모와 함께 영원히 살수 없다! 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히토미 또한 그러하다.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등의 말씀을 하시지만 히토미는 그런 생각 자체가 싫은것이다. 닥친다면 어쩔수없이 해야하겠지만 미리부터 준비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분명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실 때면 외면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서 히토미에게 극한 공감을 하고 만다.
사와무라씨 댁의 네번째 가족 이름은 '치비'였다. 지금은 더이상 함께 할수 없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수는 줄어든다. 슬프게도. 누구에게나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지금은 함께할 수 없는 그런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단순히 가장 뒤에 몇장 포함되어 있을 뿐이지만 제목을 통해서 그 이야기가 가장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이야기. 그들은 떠나버린 자신들의 가족이었던 치비를 위해서 아마 더이상 개를 키우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가 같아서 너무나도 공감하며 내 가족, 내부모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 사와무라 씨 댁. 부모님인 시로씨와 노리에씨가 조금은 더 오래도록 히토미와 함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야만 나 또한 조금이라도 더 오래도록 부모님과 함께 할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보통의 매일이 조금이라도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렸던 복수의 밤
다섯명의 사람. 저마다의 이야기는 오직 한 사람, 가타기리 타츠오와 연결된다. 가타기리는 누구이며 이 모든 사람은 각자 관련은 없지만 가타기리라는 사람을 매개로 해서 어떤 관계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가타기리는 왜 이 모든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슨일을 준비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무조건 비난했다. 얼굴에 온통 문신이 가득한 한 남자. 수십년을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살아온 전과자. 처음 시작이야 어쩔수 없는 우발적인 사건이라 쳐도 계속적인 유괴범죄는 아주 질나쁜 범죄라 생각했다. 그가 유괴한 아이들이 별달리 다친데 없이 돌아오기는 했어도 말이다. 각기 다른 다섯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닥 그의 편이 되어주질 못했다. 단지 무언가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어렴풋이 보였을뿐이다.
마지막 사람을 통해서 밝혀지는 이야기의 전모가 그리 연결되어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는 그가 각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을지,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은 무엇일지 이해할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평생을 걸고 해야만 했던 일종의 과업이라고 해야 할까. 가타기리, 이제 그는 편안할 것이다.
분명 앞에서 읽었던 대화이자 문장인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문장반복으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대에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라는 생각을하니 드라마의 교차편집마냥 흥미진진해진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 다른 곳에서는 누군가가 또 다른 일을 하고 있겠지. 단지 나는 그것을 모르고 시간은 흘러갈뿐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복수는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찌만 독자들은 미쳐 깨닫지 못한다. 복수라는 것이 누가 누구에게 행하는 것인지 말이다. 중반이후 후반부로 흘러가면서 겨우 어느 한 실마리를 잡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깊이있는 복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 한복판에 턱하고 걸리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복수에는 공소시효도 유효기간도 없는 법이다. 적이도 이 남자, 가타기리에게는 말이다.
검은 고양이의 세레나데
황금가지의 새로운 레이블 [LL시리즈]. 라이트와 리터러쳐의 머릿글자를 딴 LL시리즈는 장르소설중에서도 조금은 더 가볍고 신선하면서도 재미와 깊이를 놓치지 않는 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이 책과 더불어 [기룡경찰],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라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LL시리즈의 가벼움을 전적으로 구사하가고 있는 이 책은 가벼우면서도 깊이감을 동시에 주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지극히 무겁고 어둡지만 그것을 주관하는 주인공들의 밝은 면이 그것을 상쇄시켜 주고 있다.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도 밝음을 느낄수 있는 이유이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이후로 코지 미스터리를 몇편 보기는 했지만 그닥 능가하는 작품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지넨 미키토. 의사이면서 자신의 전문분야만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가벼운 장르물에도 딱 맞는 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여러모로 재능이 많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이전에 읽었던 [가면병동]은 정통장르를 추구하면서도 약간은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책은 그야말로 맞춤인듯 하다. 앞으로도 밝으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린 이야기들을 더욱 기대해봐도 좋을 듯 하다.
사신 치바 이후로또 다른 사신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까망'이다. 뭐 그리 촌스럽고 가벼운 이름이 있느냐고 묻을텐가. 이 '까망'이라는 존재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검은색 고양이일 뿐이다. 원래는 전능한 존재였다. 자기 자신도 늘상 주장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보스의 명을 받잡고 시키는대로 이 땅에 고양이의 모습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할 군번은 아니라고 외치면서도 보스의 명을 거역할수 없는 것은 뭐 인간사나 거기나 매한가지인듯 하다.
그가 할 일은 하나.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어느 한곳에 매여 있는 지박령들을 보내는 것. 그들이 가진 미련이나 원한같은 것들을 풀어주어야 그들은 마음 놓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 까망이 나선 것이다. 일단 유한한 존재로 돌아온 이상 먹고 자고 살 걱정은 해야 한다. 처음 만난 영 하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영은 단지 돌아갈 그릇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을 뿐이란다. 까망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 영혼은 그릇 즉 지금은 혼수상태에 있는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 여자와 한 고양이. 그들은 어떤 사건에 마주치게 될까.
트럭에 치여서 죽은 한 남자의 영혼이 있다. 경찰은 이미 자살로 마무리 지었다. 그렇지만 그의 영혼을 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무슨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의 영혼은 남아있는 그의 부인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일까.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만 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며 그냥 넘겨버릴뻔 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으니 이젠 다음번 이야기를 찾아서 넘어갈 줄 알았다.
새로운 영을 만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앞에서 등장한 사람 아니 영혼들은 모두 하나의 사건에 한줄로 매달려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이며 크게 보면 하나의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까망이는 죽은 자들의 영혼과 만나서 어떻게 이 사건을 정리하고 저들을 원래의 자리로 보낼수 있을까.
고양이는 예로부터 조금은 전능한 존재로써 이용되었고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많다. 애드거 앨런포우의 이야기에서는 호러적인 면을 담당하고 있다면 최근 추세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힐링용 고양이들이 많은 것 같다. 여기 까망이는 그들과 엄연히 다른 존재이기는 하다. 동물이긴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전능한 영적존재. 흔히 말하는 저승사자라고나 할까.
작가는 고양이에게 전능한 파워를 줌으로써 사건을 풀어가는 화자의 역활을 맡겼고 그러면서 '고양이'라라는 유한한 존재속에 집어 넣어서 그를 도와줄 인간이라는 존재를 덧붙였다. 그러므로 둘간의 케미는 자동적으로 발하게 된다, 그런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울음이 들리는가? 그 고양이가 검은색인가? 혹시 모르니 잘 보아라.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박령들을 잘 달래고 그들의 미련을 들어줄 '까망'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