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제3의 남자, 열대야

케이벨르 2023. 12. 5. 18:44

제3의 남자

바로 직전 읽었던 [흉터의 꽃]은 주인공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조사를 하러 다니는 내용이 바탕이 되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오래전에 발표한 책이 한 권 있다. 그러나 다음책을 위해서 자료조사를 하러 다닌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마주한 사건을 몸소 겪으면서 당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묶었다. 그가 발표한 책의 제목 또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제3의 남자]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읽었던 이 내용이 그대로 그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묘한 조합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기억하는가? 동네바보로 불리는, 매일 똑같은 트리이닝복만 입고 다니는 김수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알고 보니 그는 남파간첩이었던가. 제목 그대로 은밀하게 숨어 있으면서 위대하게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려고 했던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그 이후로 꾸준히 북한에 햇볕정책을 펼쳐왔다. 우리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그들의 도발은 계속 거세졌다. 노무현 정권을 넘어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에 대한 강압정책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쪽이 정권을 잡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가 정권을 잡던지 북한의 전 세계에 대한 도발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듯하다. 특히 김정은 체계로 넘어오면서 더 말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던가. 아직 어린 그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며칠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그들에게 맞서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드 배치로 인해서 말이 많다. 북한이 저렇게 나온다면 우리가 죽을 수는 없으니 대항하는 것이 맞다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치학과를 나오지 않았고 정치를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정치에 대해 관심도 없다.

 

단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 모두가 살고 있는 이 땅이 그저 안전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흉터의 꽃]에서는 원폭 피해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의 전쟁을 그치게 하려고 폭탄을 투하했지만 그 피해를 받은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백성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또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계획으로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섬뜩해지는 세상이다.

 

아버지와 마주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총에 맞았다. 한국 땅에서 총상은 드문 일이다. 총기허가가 되어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가 개인병원으로 옮겨지고 김 부장이라는 사람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수첩을 요구한다. 찾아주기만 한다면 큰 금액의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혼한 전처는 관심이 없지만 곧 유학을 떠날 자신의 딸에게는 무엇이던 다 해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쉽게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당연히 찾아서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것이 이 모든 사건의 시초가 될지는 모르고 말이다. 금방 눈에 띌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하던 책방. 낡은 책들만 잔뜩 쌓여 있는 곳, 그곳에서 수첩 하나 찾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울 것이 있겠냐라고 장담을 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수첩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는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이끌려 간다.

 

그가 아버지의 수첩을 찾는다면 거기에는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이 수첩을 원하는 그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거기에 더해서 내가 아는 내가 아니라 나의 본모습까지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심정으로 이 모든 사건을 받아들이게 될까. 수첩을 찾는 현재의 그의 모습과 더불어 젊은 날의 아버지의 모습이 교차되어서 나온다.

 

첫째 날부터 시작되어 꼬박 일주일간을 달리는 이야기. 시간 순대로 배열되어 있어 그 순서대로 이끌려가며 사건의 연속성에 몸을 맡기게 된다. 앞으로 향해갈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해만 가는 이야기는 충분히 공포심에 떨게 만든다. 나는 단지 평범한 아버지의 아들일 뿐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수첩. 그 수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열대야

[암살자닷컴]으로 소네 게이스케를 만났다. 워낙 오래전부터 알아오던 이름이고 명성을 들은 터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작가였다. 몇 개의 단편으로 이어진 연작소설은 재미면에서 충분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침저어]를 구입했다.

 

재미면에서는 [암살자닷컴]보다 떨어졌지만 촘촘하거나 무거운 면에서 확실히 어떤 작가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친김에 [열대야]까지 읽어본다. 얇은 책, 이 책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인가.

 

평범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되는 듯 했다. 대체 이 이야기는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지 하면서 의심도 했다. 뒤로 가면서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맞춰서 전체적인 그림을 드러내면서 다시 한번 소름 끼치는 경험을 했다. 잔인함은 덜했지만 이렇게 맞춰지는 조각들이 소름 끼치도록 정화웠다. 작가의 큰 그림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예 그 그림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눈앞에 놓인 나무들만 잔뜩 봤다. 나무들만 보고 있으니 대체 이 나무가 어떤 느낌으로 펼쳐지는지 이해를 할 수 없던 것이다. 드론을 띄워서 넓게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절대 눈앞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그림들. 먼 거리에서 봐야만 보이는 그림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구성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역시 작가의 상상력이란 끝이 없다는 생각도 들면서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한 부부가 있다. 그런 부부 앞에서 협박을 하는 폭력배가 있다. 자신들이 빌려간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재정상황이 안 좋아진 탓에 자신의 차도 팔아야 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남편이 빌려간 돈, 그 돈을 받으러 온 것이다. 돈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디나 같은가 보다.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갑자기 돈이 마련될 리가 없다.

 

남편은 있는 돈으로 무마해보려고 하지만 푼돈 취급밖에 안 되는 것을 그들이 받을 리가 없고 이 날따라 친구까지 같이 와있다. 아내와 친구를 인질로 잡고 남편은 처가에서 돈을 구하기 위해서 가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과연 남편은 제시간에 맞춰서 돈을 구해서 올 것인가.

 

차가 없는 그는 친구의 차를 빌려서 간다. 독특한 외제차. 오래된 차인만큼 시동도 잘 걸리지 않고 에어컨까지 되지 않는다. 그런 특징 있는 차는 금세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이 차가 어떤 단서가 되어서 사람들을 연결하게 될 것인가. 한 부부와 친구들의 운명이 이 차에 달려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낮의 뜨거운 기온이 밤까지 계속되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열대야'라고 한다. 그 열대야처럼 더운 기운이 휙휙 그대로 느껴지며 끈적한 느낌이 드는 밤 같은 책. [암살자닷컴]과 [침저어]의 사이쯤 있는 무게의 책. 첫 번째 이야기가 워낙 짜임새 있고 인상적이어서 뒷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 게 단점이랄까. 다음에는 [코]를 읽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