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이우 왕자, 로스트 케어, 문제가 있습니다

케이벨르 2023. 11. 16. 14:03

이우 왕자

부관과 함께 만주를 시찰을 간 이우. 그는 일본에서 자랐고 일본의 관리 하에서 감시받았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환경에서라면 일본인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우는 달랐다. 아무리 일본에 있어도 아무리 그에게 주입식으로 관리를 한다하더라도 그는 뼛속까지 조선인이었다. 뜯어고친다고 그가 가지고 있는 피와 유전인자를 모두 바꿀수는 없는 것이었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여전히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고 전혀 벗어날 길은 없어 보였다. 일본의 야욕은 점점 커져서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벌이고 곳곳에서 약탈을 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고통받는 것은 침략당한 나라의 국민들이었다. 그들은 나라도 뺐겼고 자신들을 지배하는 공권력 하에서 어쩔수 없이 살아나가고 있었다.일본  뿐 아니었다. 친일파 즉 일본 편에 선 관리들은 더욱더 악독했다. 일본인보다도 더 악독하게 행동하고  민생들을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그들이 변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려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이우의 혼인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어떤 여자여야 한다는 것은 없었다. 어떤 조선 여자를 데려다 놓아도 일본에서 허락을 할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누구여야 하는가. 결국 선택은 한가지 친일파이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박영효, 그의 손녀 찬주였다. 그녀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모험을 해볼만했다. 과연 이 혼인은 허락을 받아낼 수 있을까.

 

아버지를 만날 기회를 잃어버린 정희는 결국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사람들이 자국 내에서 정치를 하지 못하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정부. 그들은 일본군들에게 쫓기는 삶을 살며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정희는 만날 수 있을까. 세가족이 오붓이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우는 실존했던 인물이었지만 정희는 작가가 임의로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찬주와 이우 그리고 정희와는 삼각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더욱 강조되었을 인물, 그녀를 통해서 독자들은 그때 당시 임시정부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그들의 활약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우는 독립전선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의 지위가 그를 막았다. 오히려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수 있을까. 마음은 조선인이면서, 조선의 독립을 바라면서, 몸은 일본군에서 일본의 세계정복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이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스파이라면 자신의 임무가 뚜렷이 있으니 이해라도 할 수 있으련만 그는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중간한 입장에서 어느쪽도 취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은 독립을 선언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이 룬것이 아니었다.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뜨렸고 그로 인해서 항복을 받아낸 것이니 일본이 원하는대로 우리나라를 지배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완전한 독립은 아니니 그들은 어느정도 자신들의 목표는 이룬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반으로 갈라져 있다. 이것이 과연 일본이 원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원한 것일까. 우리의 통일은, 우리의 독립은, 완전한 자주독립은 언제나 이루어질까.

 

로스트 케어

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을 받은 작품. 그에 딱 맞는 작품이 나타났고 딱 맞는 작가가 나타났다 싶다. 역시 사람들의 눈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익히 알수 있는 작품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사람들의 입소문 만으로 선택했던 작품이었다. 독자들의 눈은 정확했다.

 

로스트케어라는 명칭은 실재하는 명칭이 아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 딱 맞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단어가 조만간에 신문의 사회면에서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돌봐준다는 의미의 '케어'라는 단어 앞에 잃어버리다라는 의미의 '로스트'라는 단어를 붙여서 새롭게 만들어 낸 단어 '로스트케어'. 돌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개호는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까.

 

노년인구가 늘어나면서 예전과는 다른 복지정책이 필요해지고 있다. 청,중년인구 한명당 한명의 노년인구를 봉양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인구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노인들은 점점 수명이 길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의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으로 무력해지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고칠수가 없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감당치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노화를 막고 약해진 부분은 인공적으로 바꾼 사이보그가 되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병으로 고통받는 노인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정책적으로 그들을 모두 보호할수는 없으니 모든 것은 가정에서 책임을 져야만 하게 된었다.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이라면 그닥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약해져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경우는 보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힘들어질수밖에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하루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일 이년 길게는 몇 십년씩 계속되는 돌봄은 하루종일 환자옆에 있어야 하는 보호자들이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가기 일쑤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나라에서는 '개호'라는 정책을 도입했다. 아픈 노인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이다. 집으로 가서 몇시간씩 돌봐주기도 하고 아예 시설을 만들어 따로 그런 노인들을 돌봐주기도 한다. 좋은 곳은 엄청나게 좋지만 그런곳은 또 몇억씩 들어가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비단 이것이 일본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일본의 문제는 얼마 지나지않아 거의 한국의 문제가 되고 있다. 치매노인을 모시던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남편을 돌보던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우리의 현실에 이 문제는 가깝게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다.

 

문제가 있습니다

귀엽게 생긴 할머니의 사진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무지개곶 찻집]의 주인인 에쓰코씨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이런 인상이라면 딱 맞는 캐릭터가 아닐까.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맛있어져라!'를 외칠 것 같은 인상이다. 사진과 딱 맞게 이 책의 성격도 그러하다. 한없이 느긋한 면이 없잖아 있다. 왠지 이 작가님의 책을 더 읽어볼것만 같은 느낑이다.

 

사실 수필이라는 장르를 그닥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신변잡기적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 작가가 뛰어날수록 더욱 자기 잘난 것을 쓰기 마련이고 (그건 나라도 그럴 것 같으므로)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 또한 이렇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렇게 많이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편안하게 읽혔다. 이것이 아마 할머니 작가가 가진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한다. 자신이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없고 무엇하러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라는 내용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응? 하면서 다시 보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두들 책을 읽으라고 난리인데 이 작가는 무엇때문에 책을 읽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무턱대고 이유도 없지 읽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책에 빠져서 이론적으로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차라리 실질적으로 세상에 나가서 현실을 익히라는 것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한때 유행했던 문장이 있다. 모든 것을 책으로 배웠다는 것이었는데 이론에만 너무 충실한 나머지 융통성이 없어서 제대로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었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거나 화장을 책으로 배웠다라는 말들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말도 맞다 싶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나 또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녀와는 또 다른 목적으로 읽으니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는 아니나 일리가 있다 싶은 생각은 든다.

 

일본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전쟁 이후 일본으로 귀환한 그녀는 여러 문화를 접해서 그만큼 다양한 글이 나오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독일에서도 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 문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어느 틀에 매여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더 자유분방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고무공 같다는 느낌이 드는 그녀의 글은 디자인 작품 같기도 하다.

 

특히 [알, 낳았다]라는 제목의 글은 '똥'을 소재로 모리사와 아키오의 수필 이후로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감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글이기도 하다. 모두다 하는 일이고 모두다 보고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물이나 주변상황을 보는 눈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그녀의 책, 왠지 모르게 어느 정도는 시니컬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따스함을 풍겨내기도 하고 어느 면으로는 위트함을 가득 담고 있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재미가 있다. 이웃집 할머니 일상을  드러내 놓고 보는 재미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