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넥스트 도어
이토록 잔인한 문장들을 이토록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잔인하기로 따지자면 최근에 읽었던 [짐승의 성]보다도 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에 비해 이런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간 작가의 담력이 더 놀랍기도 하다.
한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시체가 한방에 모여 있다. 시체가 썩는 것을 처리하고자 시체를 분해하고 싶어한다. 심장과 간 그리고 쓸개등은 길가던 개들에게 특식으로 주어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가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고문'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잔인한 면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인 토마스, 셰릴, 콜레트, 베스타, 호세인.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사정상 이 아파트에 모여산다. 셰릴은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니키가 없어져서 걱정이 된다. 니키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파트라는 공간은 그저 문만 닫으면 자신만의 공간이 된다. 누가 문을 두들기지 않는 한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것이 아파트라는 공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람들은 대체 그 속에서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일까.
올해 초 유행을 했던 드라마가 한 편 있다. 1988년도의 시대상을 그린 이야기. 그 당시 한 골목길을 바탕으로 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동네에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집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모두 다른 집에 살고 있지만 맛있는 것을 하면 다들 조금씩이라도 나누어서 먹던 시절이었고 그럴거면 그냥 다같이 모여서 먹으라는 아이들의 잔소리가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네 집에 있어.'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허락되던 그 시절. 집이라고 해도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한 골목이 커다란 하나의 집이고 모두의 가정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이제 지나가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문만 닫으면 전혀 남의 사정을 모르게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느끼고 있다는 것일까.
따로따로 저마다의 생활을 지키며 살아가던 그들은 불시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 모두가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베스타 할머니를 돕기 위한 과제. 베스타 할머니는 새벽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며 그 사건으로 인해서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처음엔 그들 또한 희생자였다. 누구에게 피해를 당하던 사람이었는데 저질러진 사건을 구조하기 위해서 이 할머니의 아파트에 투입되었고 구조하는데 실패하자 이제는 그 사건을 덮는데 있어서 공모자가 되었다. 그들이 공모하는 일은 완성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말이다. '더 킬러 넥스트 도어'. 옆집에 사는 킬러. 우리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겠다. 제발 킬러가 아님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짐승의 성], [크리스마스 캐럴]에 이은 연속 스트라이크 강함강함강함... 첫번째가 홈런이었다면 그 다음 녀석들은 중,장거리 안타 정도 되려나. 최근 들어 읽고 있는 한국 작가의 글들이 모두 다 세다.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워낙 센 일본작가들에게 치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한글의 우수성을 살려서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면 충분히 읽어줄만도 한데 말이다.
[짐승의 성]에서는 고문과 감금이 주요 소재였으니 당연히 강할수밖에 없었고 [크리스마스 캐럴]은 복수를 소재로 해서 소년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 그 역시도 아니 강할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 책은 조폭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강할수밖에. 조금은 3류영화같은 면이 묻어나오기는 하지만 재미면에서 본다면 충분히 만족하면서 읽을만한 소설이다.
단지 [고래]와 [고령화 가족]처럼 유명한 책을 써 온 천명관 작가와 나와의 첫만남이 이 책이라는 것이 조금은 아쉬울 뿐이다.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이 작가의 진면목을 알려면 아무래도 전작들을 읽어야 하겠다.
한때 조폭영화가 영화판을 휩쓸었을때가 있었다. 약간은 가벼워보이는 조폭영화라고 해야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조폭들이 떼로 나와서 싸워대면 조금은 꽉 막힌것이 풀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천편일률적인 조폭들의 세상은 끝나버렸다. 물론 요즘 나오는 영화들에도 조폭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 강도가 조금 세졌을뿐이다.
예전의 조폭들은 조금 인간미라도 있고 코믹한 면을 강조했다면 최근 나오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세고 어둡고 무겁고 건조하고 삭막하다. 영화도, 책도, 현실도, 모두들 퍽퍽해져만 가는 듯 하다. 조금은 인간미를 찾아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도 좋을텐데 말이다.
앞에서 3류영화를 언급한데는 이유가 있다. 일이 꼬이고 꼬여서 전라도의 조폭과 부산의 조폭 그리고 감독이 부른 조폭과 각 사장들이 부른 조폭들이 한꺼번에 다 연장들을 챙겨서 모이는 장면에서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싶으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너무 딱 딱 들어맞게 짜 맞춘듯한 느낌이 나서 전문성 있는 배우들이 나와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모여서 학예회에서 연극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풋' 하는 웃음을 날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흔한 말로 썩소라고 했던가.
이미 표지에서부터 이야기는 예고되고 있다. 손에 담배를 문 한 남자. 약간은 배가 나오고 아래위로 온통 하얗게 차려입어서 조금은 튀어 보이는 한 남자는 고개를 꺽어들고 누군가 자기를 불렀나? 하는 식으로 눈을 흘겨뜨고 있다. 조폭을 직접 대면해본 적은 없지만 그림으로 그린다면 이런 식이 아닐까.
그런 강한 남자들이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대신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들의 세상만이 진정한 남자의 세상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대표하는 이야이기일 뿐. 재미로 보기에는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한편으로 다르게 생각한다면 숨겨진 현실을 보는듯해서 씁쓸한 맛이 감도는 이야기.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제국 스캔들 2
그냥 일반적으로 작가가 만들어 낸 주인공으로만 생각했다. 제국스캔들과 역사 속 인물들에 관한 짧은 코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야기 속에서 등장했던 헨리 뒬렌스테트, 미우의 아버지인 박정양, 민우진의 아버지인 민상호, 거기다 주인공인 이선까지. 물론 고종황제가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니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인물인 고종과 이미 우리 역사속에서도 존재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알아내기는 쉬웠지만 다른 이들은 역사속에서 존재했을지라도 알아보기도 힘들었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인물이었다.
이야기속에서 언급되었을때만 해도 그냥 누군가의 아버지로 또는 어떤 한 등장인물로만 생각했었지 이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민상호가 친일파였다는 것도, 헨리가 외국인으로써 얼마나 대한제국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지도 전혀 몰랐다.
특히 헨리의 경우는 충격이었다. 작가가 처음에 세 주인공을 잡았을 때 미우와 이선 그리고 헨리를 생각할만큼 각별했던 존재. 민우진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그의 존재가 조금 약해져버려 안타깝다고 했을만큼 핵심적인 존재였다. 헨리는. 실제의 헨리 또한 이야기속의 헨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 전신기술 개발에 크게 앞장섰고 일본의 미움을 사서 해고되고 이후에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편에도 서지 않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현재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헨리가 없었다면 현재 세계최고라는 우리나의 통신기술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잡히고 최고의 핸드폰을 자랑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지금 헨리가 본다면 얼마나 뿌듯해할까. 줄어든 분량만큼 다른 책에서 주인공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선과 미우, 그 둘의 사랑이 영원할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시기라도 하는듯 국내의 정세는 좋지 않았고 북쪽으로는 러시아가, 남쪽으로는 일본이 끊임없이 이 작은 땅 조선 아니 대한제국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을 모두 감내할만한 능력이나 힘은 이 나라에 없었다. 결국 러일 전쟁은 시작되고 말았고 그 사이에 낀 대한제국은 속절없이 이쪽 아니면 저쪽의 손에 넘어가고 말 지경이 되었다.
한 나라의 황자였던 이선은 어떻게해서든지 이 나라를 지켜보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러시아를 방문하면서까지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쓰지만 좀처럼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의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만 생각하니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지면서도 작은 나라의 서러움을 참을수가 없다.
민우진과 아버지의 약속으로 인해 우체총사에서 근무를 계속 할수 있게 된 미우지만 그와의 결혼 날짜가 잡히고 그녀는 여전히 이선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숨길수가 없다. 거기다가 들려온 그의 죽음 소식이라니. 사실을 믿을수 없는 그녀는 직접 그의 시신이라도 보기 위해서 여행 아닌 탈출을 감행한다.
전쟁 통에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이 나라를 빠져나가는 것은 자칫 무의미한 노력이라 보여지기도 하는데 미우의 노력은 과연 성공을 할까. 그녀가 그곳에서 발견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이선의 죽음은 사실일까. 미우와 이선 그리고 민우진과의 삼각관계는 어떻게 끝이 날까.
실제사건이 존재하는 가운데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한데 모여서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간다.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거기다 당대 역사를 비교해본다면 얼마나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 이야기를 세웠는지도 잘 알 수 있다. 작가가 오랜시간 공들여 조사한 덕에 새로운 인물을 알게 되었고 알지못했던 역사에 반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