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불교를 전공한 저자. 불교적인 느낌이 가득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전혀 달랐다. 저자는 본문속에서 자신은 무교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편견임이 맞겠다. 단지 불교를 학문으로 공부하고 그 학문을 가르칠 뿐 학문과 종교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일반적인 오류인 셈이다.
문학속에서 만나는 주인공들을 마주하며 자신이 느끼는 바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작품. 같은 책을 읽더라도 저마다의 느낌이 다르기에 주인공들을 대하는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실제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 중에서 [어린왕자]를 예로 들어본다고 해도 저마다 자신들이 마났던 어린왕자의 느낌이 다르기에 충분히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감동을 받은 구절 또한 다를 것이다.
총 34권의 책으로 자신이 만났던 주인공들을 통해서 드러내는 자신만의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 [페스트]처럼 고전도 있고 [미생]처럼 만화도 있으며 [책 읽어주는 남자], [파이이야기]처럼 베스트셀러도 있고 [알바패밀리]처럼 한국 소설도 있으며 [잔등]처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도 있다. 저자가 이 책들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라는 작품은 궁금했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작품이기에 이렇게 소개가 되고 나면 더욱 궁금함이 남게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과는 다르게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안다'는 것과 '본다'는 것의 차이. 일상생활에서 구분없이 쓰이는 단어들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그 차이는 명확하게 갈린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과연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것은 함민복 시인의 글이다. 함민복 시인은 내가 외국생활을 할때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작가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던 친구가 편지를 보내올때면 꼭 이쁜 글씨로 한자한자 적어서 같이 동봉해주었던 그의 시는 먼 타국에서 읽을 때마다 찡했던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읽지 못했던 글을 보는 순간 더욱 맘이 짠했다. 잊고 있었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광범위한 작품들 속에서 작가는 차분히 자신이 하고픈 말들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을 만나면서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이라 말하는 그녀. 실제적인 만남이 아니어도 좋다. 이런 만남 또한 소중하게 여기지니 그 또한 책을 읽는 하나의 재미가 아니던가. 주인공들을 통해서 내 마음을 위로받은 소중한 시간이 또 그렇게 지나간다.
뮤즈
피카소나 모네의 유명한 그림을 소재로 삼아서 모티브 삼아 만든 이야기도 있고 하나의 그림을 두고 그에 엃힌 이야기를 그린 소설도 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그림을 가지고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그 두 시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60년대와 30년대다. 30년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60년대에는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을 뿐 충분히 생존가능성이 있는 시간이다. 즉 이것은 두 시간대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르소설 매니아들에게 추리와 유추는 기본이다.
제시버튼의 [미니어처리스트]를 비롯햇어 이번 책까지 그녀의 책은 일반적인 소설이면서도 무언가 장르적인 이미지를 내뿜는다. 그런 존재감이 소설을 질리지 않게 읽히게 만든다. 삶은 달걀에는 언제나 사이다가 짝이었던가 그녀의 책에서는 그러한 숨은 짝이 존재한다.
또한 사회성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전작에서는 나이가 어린 여자를 설정해서 그녀가 집안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며 결혼선물로 받은 미니어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존재로 설정했다면 이번에는 무려 4명의 여자주인공을 설정해서 다양한 그녀들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적인 차별 뿐 아니라 그중 한명을 흑인으로 설정해놓아 사회적 인종적 차별까지도 은근슬쩍 다루고 있는 점이 상당히 기교적이다.
1967년 런던. 이제 막 영국에서 독립한 트리니나드 토바고 출신의 흑인여자 오델. 그녀는 충분히 공부를 한 학위가 있는 여자이지만 직업을 찾지 못해 오늘도 손님들에게 신발을 판다. 그런 그녀가 미술관에서 일을 할수 있게 된 것은 신의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출근하게 되는 미술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녀를 그곳에 불러 준 것은 '퀵'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오델을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해주었다. 그들간에는 어떠한 유대관계가 생기게 될까.
1936년 에스파냐 말라가. 부유한 미술품 거래상인 아버지를 따라서 에스파냐로 이사를 가게 된 올리브. 그녀와 엄마 세라는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이내 그곳에 적응하며 살게 된다. 그녀들을 도와줄 테레사라는 소녀. 그녀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고용인이지만 올리브만의 비밀을 지켜준다. 이야기속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그녀다.
약 30여년의 간격을 띄고 연결되는 이야기는 내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게 뒤통수를 세게 쳐주었다. 장르소설에서 분명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강하게 확신했던 독자들에게 반전을 꾀하는 작가임에 분명한 제시 버튼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까 했더니 심하게 찍혔다. 아주 깊게.
'뮤즈'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 우리는 작가를 '남자'로 규정하고 뮤즈를 '여자'로 인정해버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처럼 말이다. 미술작품을 거래하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의 딸의 작품은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 시기를 벗어난 이 현재의 시대에 우리는 더이상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아직도 그런 편견을 존재하고 있는가.
오델은 비록 미술관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언정 자신만의 작품을 쓰기를 원했다. 그런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런 것들이 부담이 되어서였을까.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글이 오히려 그녀에게 더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것을 보면 말이다. 뛰어난 걸작은 의도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법이다. 바로 지금, 그녀처럼 말이다.
괴멸
공학연구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작가의 특성상 이 책은 작가의 전문분야가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나름대로는 풀어서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썼다고는 하나 지구의 내부에 구멍을 뚫는다는 설정상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전반적인 지구과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할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자칫 지루한 지구과학 수업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 다이헤이요 기술자였던 기류는 동료를 잃는 경험을 한 후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고 전과자가 되었다. 그 이후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대신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기류는 어떤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기에 외상증후군까지 보이면서 자신이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던 것일까.
환태평양고리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를 계속 보고 있다. 호주를 중심으로 해서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각 나라들에서 계속적인 지진기후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워낙 지반이 불안정한 지형이라 예전부터 끊임없이 위험지역이라고 말하여지던 곳이기도 하다. 그 끝에 일본이 있다. 그들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지구의 중심부를 뚫는다. 이것이 과연 실질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일단은 소설이니 픽션은 절대적인 힘이라 생각해보자.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 끝일까. 아니 끝이라는 것이 진정 존재는 하는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서 자연은 얼마만큼 참아줄 수 있을까. 자연은 인간과의 대결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차지 할 것인가. 우리는 궁금해지지 않을수 없다.
'기류'라는 한 인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인간은 전면적으로 자연에 대항할수 없고 자연의 힘을 거스를수도 없다. 각종 자연재해를 막을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에 대항하기 보다는 자연과 함께 살수 있는 순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자칫 '괴멸'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 장면으로 갈수록 영화 [아마겟돈]이 생각났다. 우주로 가서 행성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설치해서 날려버리겠다는 황당무계한 계획은 실제로 영화속에서 일어났고 원격조정이 되지 않아 결국은 자폭할 사람을 선택해야만 했던 그들. 그 내용이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와 계속 겹쳐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