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무코다 이발소,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케이벨르 2023. 11. 17. 15:08

무코다 이발소

작년에 시골에 다녀왔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안 계신 지금 굳이 시골에 갈 이유가 없어서 어느 순간 기억에서 멀어졌던 내 시골, 거의 몇십년에 가본 시골. 옛날 재래식 화장실이 있던 할아버지 집에는 근사한 이층양옥이 들어서 있었고 다른 모든 집들도 기억속의 집들과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한 돌산 그리고 자두밭, 드물게 있는 논들, 새록새록 살아나던 어린 기억들. 방학때마다 오지는 못했어도 명절때면 오곤 했었던 그 할아버지댁의 기억들. 새록새록 솟아났다.

 

무코다 이발소가 있은 이 도마자와 지역도 그러한 시골이다. 석탄산업이 활발할때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번성한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채광산업도 사양길로 접어들고 그나마 이 지역에 몇사람 남아있지도 않다. 그런 곳에서 단골들을 중심으로 이발소를 경영하고 있는 야스히코. 드물게 찾아오는 오래전부터 찾아오는 손님들만 있을 뿐 명맥상 유지하고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의 이발소를 생각하면 되겠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에서는 주인공이 미장원을 경영했었다. 이발소와 미장원. 헤어샵이 유행인 요즘 굉장히 구식 명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서는 나름대로의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다. 이 이발소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사람들은 또 하루를 살아나간다. 이 지역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농번기가 아니면 어디나 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시골. 더군다나 이 지역은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해서 눈이 쌓이면 어디도 갈 수 없고 고립된 마을이나 다름 없다. 그런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저런 정책을 벌이기는 했지만 지역주민들이 다들 장년층과 노년층이라 무엇을 하려 해도 반짝 인기만 있을뿐 그렇게 크게 변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지역의 부흥은 가능할 것인가.

 

그런 와중에 도시에서 잘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야스히코의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넓은 지역에서 제대로 자리잡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반, 그래도 가업을 잇겠다고 오니 기특한 마음이 반이다. 이 마음을 모르는 부인은 그저 아들이 돌아와서 이곳에서 같이 살겠다고 하니 신나는 얼굴이고.

 

일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은후에 그 돈으로 학원을 다녀서 기술을 배우고 그 이후에 아버지의 이발소를 잇겠다고 하는 아들, 이 아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곳에 돌아온 것일가 .이 곳에서 이제 스무살이 겨우 넘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것일까.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니 먹고 살아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중의 하나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이라는 산업은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 그런 농촌에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그냥 무턱대고 옛날 방식으로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유통경로를 확보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전국 아니 세계적으로 자신들의 경작물을 팔 수 있는 판로를 개척한다. 도마자와 지역은 석탄으로 유명했던 곳인만큼 농업이 주요 산업도 아니다. 이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들이 필요할까.

 

오래전 태백에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태백산에 가고자 방문했던 것인데 이 책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그곳과 이 도마자와 지역은 매우 비슷하다. 석탄산업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을 벌였던 곳이라는 것도 비슷하고 지금은 석탄산업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지역을 떠났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할까.

 

매일매일이 그대로인 삶.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그런 삶을 살아간다. 오늘이 내일같고 내일이 모래같은 그런 하루. 특별히 무슨 일이 벌어지지도 않고 꼭 해야 할 일도 없는 그런 나날들. 그런 시골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있다.

 

무코다 이발소. 왠지 도마자와에 가면 아직도 이발소가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슬며시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곳, 무코다 이발소. 따스함이 넘쳐나는 지역일 것만 같은 느낌이다.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어지간한 대학 서적만큼 두꺼움을 자랑하고 있는 경제학 책이다. 선택과목에 들어있다면 당연히 선택을 하지 않을 과목중에 하나가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아닐까. 그만큼 '경제'라는 분야는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본다면 우리는 경제학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자본이라는 것이 있고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 필요한 사회활동을 하는데는 경제라는 관념을 모르고는 살아갈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선택이라고 해서 피할수는 있지만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 필수요소가 이 경제라는 분야다. 신문에서도 경제 코너를 별도로 다룰만큼 그 중요성은 일상생활에서도 부각되고 있는 것을 볼 수있다.

 

경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돈? 재테크? 부동산? 경기?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돈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우리가 생활하는 것이 돈과 관련이 되어 있기때문에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이 책은 크게 금리, 환율, 주식, 부동산, 소비,노후, 세금과 복지, 인구기술과 일자리, 한국경제, 중국경졔, 세계경제의 12개분야로 나누어진다. 제목만 봐도 꼭 필요해서 먼저 보고 싶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인구처럼 이런 요소가 왜 경제와 관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요소들도 있다. 특히 실생활과 가장 먼저 연관되는 금리와 하환여율같은 분야에 관심이 가는데 예전에는 정말 10%대의 예금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리 큰 돈을 맡긴하 다러다도 1%대의 이율만 적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묵혀 놓고 있을 뿐 딱히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목돈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는가가 고민이 될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을 고려하여 주식과 부동산 편으로 이어지면서 자신이 관심이 있는 항목만 볼수도 있다. 딱히 차례대로 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또는 환차익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환율편도 관심이 있을 것이다. 대체 환율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지 어떤 결과에 따라 환율이 정해지는지 여러가지 몰랐던 부분들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외국에 누군가가 나가 있다면 더욱 환율은 신경 쓰일수밖에 없다. 가급적 환율이 떨어졌 때 사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감한 요소다.

 

경제활동이라는 것도 사람의 성향을 무시할수가 없는데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큰 이익을 얻고 싶은 사람과 원금을 어떻게든지 보존하려는 소극적인 사람의 경우 경제에 집중하는 것도 다르기 마련이다. 다 똑같은 지표를 삼았다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파산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수도 있게 된다. 그런점들을 특별히 유의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각 챕터별로 4개의 스텝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자신의 경제지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간단한 질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단계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이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체크해 볼수가 있는 것이다. 기본기를 설명하고 심화스터디를 통해서 자세히 알아본 다음 마지막으로는 실제로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핵심을 짚어주고 있다. 신문기사라고 해도 무조건 믿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그런 부분까지도 확인을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사실 신문을 볼 때 경제면을 빼놓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보수적인 성격이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기보다는 신중하고 원금손실을 하지 않는 경우를 꼭 조건으로 내세울때도 많다. 재테크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을때도 많다. 이 책을 읽어본 후라면 자신의 경제활동을 다시 한번 살펴볼 기회가 될 것이다. 자신이 이 경제활동의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누구나 꼭 한번 이상씩 필요해야 될 대한민국 국민의 필독서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경제학이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에 관한 책들은 끊임없이 나온다. 그것이 책의 유행이다. 정도전이 나왔을때도, 장영실이 나왔을때도 그랬다. 이제는 바야흐로 신사임당의 시대인가 보다.

신사임당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번 권지예 작가의 [사임담의 붉은 비단보]라는 작품을 통해서 사임당의 색다른 모습을 본 적이 잇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써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구현하고 있는 사임당을 소재로 해서 굉장히 특이하게 비틀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소설.

 

주원규 작가는 어떤 신사임달당을 그리고 있을까. 소설과 영화 에세이 여러방면에서 글을 쓰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이 책으로 처음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한 선입견도 편고 없이 단지 내가 읽었던 다른 사임당과는 어떻게 다른가가 궁금할 뿐이다. 어려서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사임당을 이야기의 그리고 있다.

 

신명화의 둘째 딸로 태어났던 사임당. 여자이기 때문에 어떤 이름도 없었던 그녀. 그녀 뿐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여자들이 다 그러했다니 할 말도 없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의 집. 강릉에서 유명했던 그의 집안에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이씨부인일 뿐 그 외의 이름이 없었다. 지역이름을 넣어서 천안댁. 부산댁, 이렇게도 불렸고 남편이 벼슬을 하면 그에 맞춰 진사부인이라고 불리기만 했던 여자들.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고 살았던 것이 못마땅했을까. 신명화의 둘째딸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짓는다.

 

그녀의 가장 특출난 장기는 기름을 잘 그린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처럼 산수를 그린 것은 아니고 자신의 주위에서 볼수 있는 풀이나 벌레들을 그린 것이었지만 그녀의 그림은 생동감이 있었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남을 자랑했다. 그런 실력으로 나중에 아무것도 없이 놀러만 다니는 남편을 대신해서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너무나도 아끼는 그녀를 멀리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고 대신 사위를 오죽헌에 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 상대를 잘못 골랐다. 홀어머니밖에 없는 집안에 하나뿐인 아들을 데리고 오면 어쩌라는 말인가. 그쪽 어머니가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까. 그녀가 혼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 원치않는 결혼에 아버지의 부고까지 한꺼번에 당한 사임당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무리 공부하라고 떠밀어도 마마보이처럼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는 남편, 아무 뜻도 없고 목표도 없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남편, 사람 좋아하는 것이 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놀아야지 이건 뭐 한량과 다름없지 않은가. 사임당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익히 잘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녀가 오직 마음을 쏟았던 것은 더욱 아이들 뿐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아이의 복은 있어서 줄줄이 아이들을 낳았던 그녀. 조금 못 미치는 감은 있어도 지극한 효심을 보였던 큰아들부터 엄마의 실력을 그대로 빼어 닮은 큰딸 그리고 그녀가 가장 신경을 썼던 현룡, 셋때아들. 어려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사임당은 그 아이만 차별하지 않았다. 특출나게 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꾸짖었고 겸손함을 가르쳤고 제 누이나 형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그림에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양육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이다.

 

책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배워온 것일게다. 특출난 둘째딸, 이름까지도 스스로 지어서 불러달라고 했던 그 딸. 여자아이였어도 어머니에게는 듬직한 남자아이 같았던 그런 둘째딸. 그런 아이를 키운 어머니였으니 당연 보고 듣고 배운바대로 했었을 것이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또다른 훌륭한 어머니가 나오는 법이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오히려 눌려 살아야만 했던 그녀 사임당.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였다면 그녀의 재능이 활짝 펼쳐질 수 있었을까. 못가본 길은 여전히 아쉽고 미련이 남는 법이다. 누구에거나 역사적 사실은 과거형으로 남으니 더욱 안타까울수밖에.

 

여성으로써 처음으로 지페의 주인공이 되었던 사임당. 그녀를 설정할 떄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가치가 있냐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기념할 만한 뛰어난 업적은 없을지언정 이정도면 여성 최초여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폐를 꺼내서 사임당의 모습을 가만가만 다시 한번 살피게 된다. 그녀, 참 힘들었겠구나. 그림을 그릴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말이다.